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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ggu master craftsman was inventor first

2012/02/18 | 321 views |  | Permalink | 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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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 Sin-ha uses the machine he developed to carve wood from a royal foxglove tree into an hourglass-shaped janggu at his studio in Gimje, North Jeolla. Kang became a janggu craftsman after working in a coal mine in Japan during the colonial era, which he says gave him the dexterity to execute his craft. By Kwon Hyuk-jae

The vast grain fields of Gimje, North Jeolla, were annexed in 1914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but the sound of traditional Korean music played by Korean farmers never left the place.

Rather than lamenting their misfortune, the farmers made sure that their music resonated throughout the region in order to boost the spirits of their fellow Koreans during the hard times. At the heart of this sound was the janggu, an hourglass-shaped drum.

Kang Sin-ha, 90, has been making janggu for 60 years using the same techniques he learned as a young man, since he believes that a "janggu made by machine cannot make an appropriate sound". But before becoming a master craftsman, Kang was an inventor first.

Kang began learning how to craft janggu when he was 30, when the country was on the verge of war. He was returning to the country jobless after having been forced into labor at a coal mine in Japan.

Kang Sin-ha carves a janggu at his studio in Gimje, South Jeolla.

"I only found out that I was at a coal mine when I got off from the boat", Kang told the JoongAng Ilbo in an interview at his studio in Gimje. "I couldn't earn a single penny".

He said he had been told he would be working at a steel factory, earning money for his family. But he spent the next years working in the coal mine, at the Mitsubishi dockyard and elsewhere before returning to Korea. Though the experience was harrowing, he said the skills he learned would later give him the dexterity he needed to carve janggu.

When he was back in Korea, Kang made the difficult decision to learn a new skill and began studying janggu construction with master craftsmen Baek Bong-nam and Seon Un-pil.

"It was a time when everybody was starving to death and since I was willing to learn how to make janggu, they did not refuse", Kang said.

Although starting a new trade wasn't easy, Kang caught on quickly and was soon busy filling orders. He learned to make the instrument the old-fashioned way, using wood of the royal foxglove, or paulownia, tree and carving the body with only a chisel and hammer. It was a time-consuming process that sometimes held him back.

"We weren't always able to deliver our janggu on time", he said.

To speed the process, Kang began studying automechanics and ultimately made a semi-automated lathe that would spin the wood quickly while he carved it with a chisel. His invention soon saw him produce up to six janggu a day and allowed him to expand his operations beyond Gimje to Gunsan and Iksan.

"Since people couldn't always bring the wood to me, I would take the machine with me to places where people needed me to make janggu", he said.

Sometimes, his creations would spark rivalries between towns, with musicians asking him to make their janggu better than the ones he made for competing towns.

"People asked me to make janggu that would make a bigger sound than the janggu from other towns", Kang said.

Because this was a job that only a master craftsman like himself could accomplish, demand for his work increased.

According to Kang, a janggu is shaped as it is for a reason. The jorongmok, which is the round tube in the middle connecting the two sides of the hourglass-shaped body, makes a deep, clear echo sound, Kang said. The length of the jorongmok determines the sound, with wider tubes producing deeper sounds and narrower tubes producing a crisper sound.

"When making a janggu, it is crucial to control the shape since one mistake could produce an entirely different result", Kang said.

One of Kang's regular customers was Park Pan-yeol, an intangible cultural asset for Gimje nongak (farmers' music).

In Gimje nongak, the janggu is the only drum used, so it is very important that it be made well. During his lifetime, Park was said to have visited Kang often to order custom-made janggu.


By Kang Ki-heon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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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세 '장구' 장인이 말하는 소리의 비밀은?

마이스터를 만나다 ④ 농악의 고장 김제 악기장 90세 강신하

"장구는 잘록한 허리가 생명 … 기계로 깎아선 제 소리 안 나"



서울에서 승용차로 3시간. 만경강을 가로지르자 넓은 평야지대가 펼쳐진다. 만경강과 동진강을 낀 평야에 들어찬 전북 김제시는 삼한시대에 '벽비리국'으로 불렸다. '벼의 고을'이란 뜻이다.

악기장 강신하(90)씨는 이곳에서 60년 동안 장구를 만들고 있다. 곡식이 풍성해 일제강점기 수탈지로 이용되기도 한 김제평야는 벼농사의 역사만큼이나 농악기의 역사도 깊다. 농악기 소리가 모종을 심던 농부들의 손에 힘을 보탰고 풍년은 농악이 곡창지대에 울려 퍼지게 했다.

전북 임실군에서 태어난 강씨는 17살 때 김제시 신풍동으로 이사를 왔다. 강씨의 젊은 시절은 김제의 운명과 닮았다. 논이 지천이었지만 일제 수탈로 곡식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스무 살 무렵, 철공소에서 일할 사람을 찾는다는 공고를 보고 일본으로 건너갔지만 정작 도착한 곳은 큐슈(九州) 탄광이었다.

그는 "배에서 내려서야 탄광인 줄 알았다. 그때 그렇게 속아서 가는 것이 아니었는데 철공소에서 일할 사람을 뽑는다고 해서 돈 좀 벌 수 있을 것 같아서 따라갔는데 결국 4년을 일본에서 일했다"고 말했다.

탄광에서 일한 지 6개월 만에 탈출한 강씨는 미쓰비시 조선소에 전쟁 물자를 만들어야 했다. 조선소에서도 또 다시 징발당해 군사작전용 굴을 뚫는 일에 동원되다 광복을 맞아 김제로 돌아오게 됐다.

-어떻게 장구를 만들게 됐나.

"막 서른 살 될 때 던가 그랬다. 배를 타고 와서 서울과 부산에서 일자리를 찾아보려고 하다가 결국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때 백봉남·선운필 선생이 장구를 만들고 있었는데 나도 손재주가 있어서 옆에서 장구 깎는 것을 보고 배웠다. 먹고 살기 힘들 때라 (장구 만드는 것) 배운다고 하니까 집에 가라는 얘기는 안 하더라".(웃음)

서른 살은 장인의 길에 들어서는 사람치곤 빠른 나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특유의 손재주로 장구 만드는 기구를 직접 만들어 장구통을 깎았다. 그는 "끌과 망치로 일일이 오동나무를 깎아서는 주변에서 밀려드는 손님들에게 제때 장구를 만들어주기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1년 동안 연구해서 자동차 기어장치와 엔진 등을 이용해 장구통을 깎는 반자동식 기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기구가 오동나무를 빠르게 돌리면 강씨가 끌을 이용해 장구통 모양으로 겉을 깎아내고 나서 안을 파낸다.

-하루에 몇 개나 만들었나.

"많이 만들 때는 6개 정도 깎았다. 나무에 색을 칠하고 쇠가죽을 씌우는 일은 시간이 더 걸리니까 그건 빼고. 한창 일 할 때는 주변에 있는 군산과 익산에서도 장구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면 버스를 타고 장구 만드는 장치를 짊어지고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깎아줬다. 오동나무를 직접 실어서 올 수가 없어 내가 짐 가지고 간 거다".

-재미난 시절이었겠다.

"옆 마을에서 장구 소리가 들리면 다른 마을에서는 저것 보다 더 소리가 크게 울리게 깎아달라는 요구를 했다. 장구 소리로 마을끼리 경쟁이 붙어가지고. (옆에 있는 학교 건물을 가리키며) 거짓말 보태면 내가 지금까지 저 만큼은 깎았을 거다". (웃음)

아흔 살이 넘은 나이에도 작업장에 들어선 강씨의 눈빛은 남달리 빛났다. 강씨가 만든 장구는 울림이 깊다. 사람들이 원하는 소리에 맞춰 장구통을 깎는다. 같은 오동나무지만 나무마다 소리가 달라 경험이 부족하다면 어려운 일이다.

입력된 대로 컴퓨터가 장구통을 깎아내는 세상이지만 강씨는 아직도 직접 장구통을 깎는다. 그가 만든 기계는 통나무를 돌려줄 뿐이고 끌로 나무를 파내는 건 작업은 오로지 강씨의 몫이다. 힘 조절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목이 부러지고 만다. 그만큼 섬세한 작업이고 장씨의 손 끝 힘에 소리가 달라진다.

환갑을 넘은 아들이 기술을 이어 받았지만 자신에게 주문이 들어오면 직접 오동나무를 깎는다. 장구의 '소리 철학'은 단순하다. 강씨는 "허리가 잘록해야 울림이 맑고 깊다. 소리가 지나가는 구멍이 조봇(좁아)해야 멀리까지 퍼진다"고 말했다. 장구는 목이 길고 구멍이 가늘면 소리가 멀리 퍼진다. 목이 짧고 구멍이 크면 소리가 주변에서 머문다. 목의 길이에 따라 장구의 소리는 천차만별이다. 장씨의 장구 소리는 울림이 깊어 인기가 많았다.

김 제농악 무형문화재로 유명했던 고(故) 박판열씨가 강씨의 가게 '신풍장구'의 단골손님이었다. 김제농악은 쇠와 장구를 주된 악기로 사용하고 큰 북은 사용하지 않는다. 타악기인 북의 역할을 대신해야 했던 장구는 그만큼 중요한 농악기였다.

"기계로 깎은 장구는 제대로 된 소리를 낼 수 없다. 깎는 기술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제대로 소리를 낼 수가 없는 것이 '장구'다".[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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